오쎈틱 범털 제작소(authentic tiger hair workshop)
[힐]부산여행-6월10일, 혼자 있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26. 00:06
6월 10일. 혼자 있기. resti sole
숙소를 나와서 용궁사에 갔다. 씨앗호떡을 먹으며 "관광지화"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톡톡히 느꼈다. 호떡은 아주 맛있었다. 그리고 아구찜을 먹으러 갔다. 이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아서 황송했다. 그리고 나는 이왕 황송해할거면 최선을 다해 황송해하기로 하고, 끝까지 잘 얻어먹었다. 준비해주신 많은 것들에 빠짐없이 감사하려 했다. 배려란 그림과 같아서, 안목이 있는 자에게만 보인다. 나는 그 안목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며칠이나 더 부산에 있을지, 당장 오늘 서울로 갈지 어떻게 할지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는데, 마소리스가 가방에서 척하니 부산 관광지도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왜 부산 시민이 부산 관광 지도를 가지고 있는거지?ㅋㅋㅋ 집에도 여러 장 있다고 한다.
지도를 보면서 대충 계획이란 걸 세웠다. 오늘하고 내일은 이 근처, 광안리하고 해운대에서 혼자 지내고, 그 다음날인 화요일에는 마소리스와 남포동 일대를 다녀야지! 좋아! 어버버버하다가 어떻게 그렇게 결정이 났다. 시티투어 버스나 뭐 여러가지 것들이 월요일에는 운영하지 않는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점심을 다 먹고, 드디어 혼자가 됐다. 나는 확실한 개성이 없는 밍밍한 청년. 그렇지만 내가 지금 원하는 것,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즉각 안다. 하루 동안 호의적인 사람들로부터 손님 대접을 받으며 정말로 잘 지냈으니, 이제는 혼자 있고 싶었다. 혼자가 되니 마음이 충만해졌다. 바람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혼자 있을 때 뿐이다.
한낮은 너무 더워서 볕을 피해 신세계 교보로 들어왔다. 일기장을 사러 왔다. 정말 한참을 고르다가 결국 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았다. 계산을 했다. 그러는 내내 사실 가슴이 두근거려서 어떻게 해야할 바를 모르고 괜히 이 진열대에서 저 진열대로 걸어다녔다. 그러지만 않았어도 훨씬 일찍 쇼핑을 마쳤을 것이다.
스매싱펌킨즈가 듣고 싶었다.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귓가에 자꾸 1979 음반이 순서대로 맴돌았다. 오랫동안 음악이 듣고 싶지 않았었는데, 간밤에 있었던 일들 때문인가보다. 음악에 설레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두근두근거렸다. 피아노가 치고 싶었다. 서울에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오직 피아노를 치기 위해서. 그러나 나에게 불어온 이 바람을 팔목에 휘어감아 머무르게 하려면,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무엇인가 재미있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바람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혼자 있을 때 뿐이다.